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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영화

by 별별기획자 2022. 11. 16.

1929년 소설이 원작이다

1929년 출간된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1898-1970) 의 반전 메시지를 담은 소설. 레마르크는 독일태생의 소설가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후에 나치가 집권하자 먼저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지냈고, 후에 나치가 몰락하자 유럽으로 돌아와 스위스에서 지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1차대전의 서부전선을 다루고,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2차대전의 동부전선을 다루는 소설로 둘 다 빛나는 명저이다. 그 외 작품으로는 1차대전 종전 후 돌아가는 병사들을 다룬 다룬 '세 전우들', 귀향한 병사들의 방황을 그린 '귀로' 등이 있다. 

이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에 직접 참전했던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반전소설로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서 나타난 과학의 신비 기관총, 독가스의 사용과 참호전의 생생한 묘사를 접할 수 있다. 반전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독문학적으로도 특기할 만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쓰인 대화들은 그동안 독일 소설에 잘 나오지 않던 생생한 속어체 문장으로 표현되었다. 게다가 군대에서 쓰이는 전문용어나 은어가 자주 나와 리얼리티를 살리고 있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점

원작과 다른 부분이 많은데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고위층 인사를 등장시켜서 주인공과 대비시킨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파울 보이머의 시각에서 사건을 전개하는 원작과 달리 2022판 영화에서는 정전협상을 주도하는 사절단과 전쟁을 계속하려는 장군이 등장해서 일선의 병사인 파울의 처지를 더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또한 원작에 비해 액션성이 강화되었고, 작품의 결말로 향하는 전개 역시 그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원작에서는 카친스키가 죽는 시점에서 이미 주인공이 겪는 모든 갈등요소는 목적을 잃어버렸고, 주인공은 아무런 드라마도 없이 그저 평온하게 세상을 떠난다. 이 시기가 전쟁이 끝나기 불과 얼마 전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언급은 되지만 그게 주인공의 죽음을 더 안타깝게 하는 느낌이 없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이미 전쟁이 진행되는 내도록 소중한 전우를 하나둘씩 거의 다 잃어버리면서 삶의 의미 역시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지속적으로 정전협상이 진행되는 장면을 중간중간 연출해서 주인공이 어차피 끝날 전쟁인데도 굳이 벌어지는 최후의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첨예한 갈등구조를 결말 직전에 드러내어 최후에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쓰러지고 마는 주인공의 죽음을 보다 극적으로 그려내었다. 조금씩 무너져가다 끝내 완전히 스러져버리는 모습으로 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준 원작과 달리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하는 처지를 통해 강렬하게 반전 메시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자잘한 차이점으로 가자면 중대가 반절이 될 정도로 포격을 당한 직후에 배터지게 밥을 먹으면서 시작하는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주인공이 입대하는 시점부터 다룬다. 원작에서는 알베르트 크로프가 무릎 위에 총상을 입고 다리를 절단해서 자살을 생각하다가 그만두는 반면에 영화에서는 탸덴이 다리에 부상을 입고 절망해서 포크로 목을 찔러 자살한다. 카친스키 역시 원작과는 달리 주인공과 함께 농장에서 달걀을 훔치다가 농장 소년에게 총을 맞아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으러 가는 중에 죽는다.

주인공이 프랑스 인쇄업자 제라르 뒤발을 죽이는 부분은 생략하거나 변경하지 않고 매우 집중적으로 다루는데, 이로써 반전에 대한 메시지를 더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원작부터 이미 당대에 반전소설로 유명했던 작품이지만, 2022판 영화는 상술한 변경점이나 원작의 특정 부분에 대한 강조를 통해 한층 더 자극적으로 반전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출처: 위키백과)

 

 

전쟁의 참상, 피가 들끓는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영어: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는 2022년 개봉한 반전 영화이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930년판과 1979년 TV판에 이은 세 번째 영화화이다. 에드바르트 베르거가 감독을 맡았고, 다니엘 브륄, 알브레히트 슈흐가 출연한다.

 

영화 줄거리

1917년 봄 북독일, 파울 보이머와 루트비히, 프란츠, 알베르트 크로프는 다함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만17세의 나이로 입대를 하게된다. 그리고 하루만에 루트비히는 적의 포격에 죽었다. 그리고 18개월이 흐르고, 독일은 지난 몇주에만 사상자가 4만명이 나오는 지경에 이른다. 휴전에 관하여 건의하기 위해서 원수를 방문하는 예르츠베르거 그리고 예르츠베르거의 아들 또한 대전쟁에서 죽는다. 또 시간은 흘러 1918년 11월 7일 알베르트 크로프, 파울 보이머 그리고 전선에 처음온날 부터 함께 지내 친해진 카친스키, 탸덴이 후방에서 쉬는 모습이 나온다. 그 다음날 1918년 11월 8일 실종된 배치되야할 60명의 신병들을 찾으러 기차역에 갔는데, 독가스때문에 다 몰살됐었다. 1918년 11월 9일 예르츠베르거는 휴전회담에 참여하게 돼었고, 루트비히의 중대는 최전방에 배치되어서 프랑스군 참호를 공격하다가 오히려 역으로 밀려서 라티에르의 평원에서 북동쪽 2km 에기자크로 철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친구 프란츠를 잃어버리고 크로프는 죽는다. 1918년 11월 10일 에기자크로 재집결을 완료한 파울, 거기서 카친스키를 만나고 휴전회담에 관한 소식, 프란츠의 죽음을 알게됐다. 그리고 부상을 당한 탸덴은 자살을 한다. 다음날 1918년 11월 11일, 빌헬름 2세는 퇴위하고 혁명세력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세우고, 휴전협정 조인을 하라고 예르츠베르거에게 지시한다. 6시간후인 1918년 11월 11일 오전11시부터 효력을 발휘된다고 했는데, 정신이 매우 이상한것같은 파울의 지휘관이 라티에르의 평원으로 돌격하여 오전11시가 되기전에 점령을 하라고 한다. 그 전투에서 파울은 죽었다.

 

 

영화 평론가들의 이야기 

https://wspaper.org/article/28539

 

[영화평]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 리메이크): 제1차세계대전에 대한 통렬한 고발장

반전(反戰) 소설의 고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새로 각색한 이 영화는 산업화된 전쟁의 참상을 온전히 보여 준다. 영화는 한 젊은 병사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이 병사의 피투성이 군복

wspaper.org

반전(反戰) 소설의 고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새로 각색한 이 영화는 산업화된 전쟁의 참상을 온전히 보여 준다.

영화는 한 젊은 병사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이 병사의 피투성이 군복은 수선해 재사용하려고 전선에서 후방으로 보내진 군복 무더기에 더해진다. 이 장면은 애국주의 열기에 휩싸인 채 전쟁 기계에 총알받이로 동원된 한 무리 젊은이들의 장면과 교차된다.

불길하게도 앞 장면에서 죽은 병사의 군복이 이 파릇파릇한 신병 중 한 명에게 지급된다.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다.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처음 영화화된 것은 헐리우드에서였다. 이 영화에서는 미국 배우들이 독일 병사들을 연기했다.

이 영화는 1930년에 개봉했는데,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베스트셀러 독일어 소설이 출판된 지 1년 후였다. 그때만 해도 제1차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의 대학살이 아직 최근의 기억이었다.

왜 지금 리메이크된 것일까? 이번에 개봉한 영화의 독일 감독 에드바르트 베르거는 영국 시사회에서 밝히기를, 유럽에서 민족주의 정당들과 나치 정당들이 부상하는 것이 영화 제작의 동기였다고 했다.

베르거의 이번 영화는, 제1차세계대전을 영웅주의적 관점에서 복권시키려는 샘 멘데스 감독의 최근작 〈1917〉 같은 시도들에 대한 통렬한 반박이다.

살아남기

이 영화에 영웅은 없다. 화염방사기·탱크 같은 신무기가 횡행하는 참혹한 현대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의지만이 있을 뿐이다.

연출과 촬영 기법도 훌륭하다. 진창과 유혈 투성이인 전쟁 장면들과 숨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교차된다.

레마르크의 소설은 제1차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당시의 애국주의 열기를 그리며 시작된다. 이를 베르거의 영화는 1917년 봄에 시작한 후 1918년 11월 평화 회담으로 건너 뛰는 것으로 각색했다.

다니엘 브륄이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를 연기했다. 에르츠베르거는 이 회담의 독일측 대표로, 이후 암살당하고 훗날 나치에 의해 반역자로 악마화됐다.

에르츠베르거는 독일군이 굴욕적 평화 협정을 거스를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깨닫고는, 정식으로 휴전을 선포하는 데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대반역” 신화

독일군은 전쟁에서 패한 것이 아니라 후방의 사회주의 세력이 배신한 것 때문에 무릎 꿇었다는 주장

하지만 독일군 장군 하나는 독일의 항복에 격분한 나머지 자기 연대의 비참한 상태는 무시하고 종전 바로 몇 분 전에 최후의 자멸적 공격 명령을 내린다. 베르거의 각색은, 독일 극우가 그토록 떠받드는 “대반역” 신화*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다.

그러나 베르거의 각색이 낳은 문제들도 있다. 거의 3년 간 계속된 대학살 이후에도 여전히 입대를 열망하는 10대 무리들이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또 영화가 다루는 시간대가 1917년~1918년으로 바뀌었지만, 영화는 “볼셰비키”와 유럽을 휩쓰는 혁명의 파도에 관해서는 아주 최소한으로만 언급한다. 전쟁을 실제로 끝낸 봉기는 고사하고 독일군 내의 반란에 대해서도 일말의 언급이 없다.

고참 병사 크로프의 멋진 대사도 빠졌다. 소설에서 크로프는, 장군과 각국 지도자들만 나가 싸워야 하는 전쟁이 있다면 자신은 그 전쟁을 지지할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각색한 이 영화는 산업화된 현대전에 대한 통렬한 고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