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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백년여행기> 무거운 디아스포라 르포를 재미있게 표현하다!

by 별별기획자 2023. 10. 5.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도 현대차 시리즈 작가로 정연두가 선정되었다. 정연두는 <백년여행기>라는 재미있는 전시를 선보였다. 
어떤 점이 재밌는 가 하면, 마치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으면서도 무거울 수 있는 디아스포라를 감각적인 오브제와 영상, 조각, 회화, 사운드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였다. 평소에 생각지 않았던 이주민의 이야기와 정서, 낯선 땅에 뿌리 내리기까지 힘들었을 그들의 이야기와 척박한 삶들을 전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들려준다. 하지만 무겁지 않다. 작가도 너무 무겁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전시를 즐겨달라고 했다. 


 
전시의 주제는 멕시코에 정착해 사는 한국 이주민 이야기이다. 디아스포라가 주제인 본 전시는 처음엔 귀여운 인형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영상이 등장하는 전시 중반에는 나중엔 르포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가. 마지막엔 예술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주었다.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는 다소 무거울 수 있지만 전시는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멕시코에서 건너와 한국에서 자라는 백년초가 모티브로 전시장 곳곳에 등장하는데 이 식물은 이국적이기도 해서 공간에 조각을 놓으니 굉장히 이국적이면서도 신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백년초 씨앗과 이파리들을 치환시킨 오브제들이 서울박스 거대한 높이의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이 오브제가 알록달록하고 감각적이어서 전시장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서울박스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오브제 아래 서면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이주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백년초가 멕시코에서 날아와 한국에서 잘 정착해서 사는 것을 차용하여 표현했다.



전시 마지막에는 12미터 높이의 <날의 벽>이라는 설탕 뽑기 형태로 전세게의 다양한 농기구를 만든 작품이 매우 인상깊다. 매우 높게 전시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작품의 크기도 그렇지만 농기구라는 노동의 상징적 집약체가 거대하게 나열되어 있는 것이 나를 압도했다. 경건해지는 것도 같았다. 마치 낯선 이국 땅에가서 땀 흘리며 뿌리를 내리려고 힘들었을 이주민들의 삶에 공감이 갔달까. 또한 이 벽은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에서 착안했다고 했다. 설탕 뽑기로 매우 연약한 재료로 무겁고 고된 삶을 표현한 아이러니도 참 재미있는 지점이다. 이런 역설의 방식이 전시를 재미있게 감상하게 하는 포인트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는 전시가 스토리텔링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매우 흥미로웠다. 도입부는 하늘을 날으는 백년초 씨앗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낯선 이국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국적인 한국인(내가 보기엔 교포같이 생겨서 마냥 한국적이진 않아서)을 응시하도록 한다. 그리고 르포 같은 영상과 함께 한인의 정착기를 한맺힌 창소리로 들려준다. 
작가는 다소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음악, 조각, 회화, 영상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이 점이 굉장히 재미있었다.